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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적어도 20년전인 사진일 것이다. 우리집은 과천이여서 서울대공원과 매우 가까워서 동네친구들과 자주 개구멍으로 갔던 기억도 난다. 이 사진은 서울랜드 안에 정자근처 벤치에서 찍은 것이다. 난 특히 이 사진 속에 상황과 이사진이 매우 기억에 많이 남는다. 대부분 어린시절에 대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몇가지씩 기억하곤 한다. 그것은 성장하는대 있어서 개인적인 차이가 있지만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이 시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다. 만약 이 대로만 자랐다면 난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참고로 난 지금 나의 삶과 상황에 매우 만족한다.) 근데 사실 이 사진 포즈 센스는 남다르다. 지금은 저런 모델로써의 재능은 없는데 말이다. 벤치밑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아빠를 쳐다보는.. 매우 창의적인 포즈.. 과거의 나 자신이지만 놀랍다. 지금보다는 뭔가 개구장이스럽다. 이상태로 컸다면 클럽을 드나들며 여자들에게 추근덕대며 까불고 술마시고 당구장과 PC방을 드나드는 그런 현대의 지극한 평범한 20대가 아니였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단편적인 기억만이 남는 어린시절은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그때는 국민학교. 딱 국민학교라는 용어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몇가지 단편적인 사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초등학교라고 명칭이 바뀌면서는 대부분 많은 일들이 생각나는 것 같다. 아마 의학적으로 이런 것을 말하는 용어가 분명 있을것 같다. 없으면 만들면 되고.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고 슬픈 기억도 재미난 기억도 있다. 좋은 기억은 그 동네 친구들과 매일 놀면서 정말 걱정없이 매일 놀기만 한것 같다. 그리고 아마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는데 그 사진은 안타깝게도 없고 그 친구들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은 우리 앞집 돌계단에서 다 같이 찍은것 같은데.. 그들도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은근히 궁금하다. 막상 그렇게 기억나는 추억은 없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지하차도가 있는 집 앞길을 같이 뛰었던 기억이 내 머릿속에는 너무 행복하게 느껴진다. 근데 사실 그렇게 많이 같이 조깅을 했던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그 느낌이 좋았나보다. 매일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그럴수 없었기에 더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내가 밤늦게 너무 아팠을때 아빠가 날 등에 업고 시내로 막 뛰었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그때는 집에 자가용이 없어서 그리고 아마 새볔이라 택시도 없었던 것일까? 그냥 난 아빠등에 업힌채 계속 뭔가 뛰어다녀졌다. 그리고 병원가서 치료를 받고 그런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열이 많이 나는 나를 업고 새볔에 뛰어가는 아빠의 땀이 흥건한 등이 기억날 뿐이다.
이것은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지는 기억이다. 어느날 엄마가 동네 개에게 물렸다. 난 어디선가 오면서 올라면서 그것을 목격했는데 바보같이 숨어있었다. 지금까지도 너무 후회되고 내가 너무 원망스러워지는 기억이다. 그때도 망설이는 내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서랄까. 더욱이 엄마한테 누군가 해코지를 하면 어떤 이유라던지 가만히 못두게 되는것 같기도 하다.
재미난 기억은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 예쁜여학생이 다녔는데. 어렸을때 나의 친구와 동시에 그 아이를 좋아했었던것 같다. 근데 유치원의 풍습(?)중에 자신의 생일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한테 뽀뽀 받을수가 있었는데 나의 친구와 나는 모두 그 여자아이를 지목했다. 근데 내 친구가 나보다 생일이 많이 빨라서 그 아이에게 뽀뽀 받는것을 보고 매우 부러워했고 결국 나도 뽀뽀를 받았던 것 같다. 근데 더 웃긴건 그 여자 생일때 내친구를 지목해서 씁쓸했고 집에 가면서 친구는 날 약올린것 같다. 웃긴다.
어른들은 모른다. 아이들이 기억할 것 임을. 모르겠어 유독 더 기억 잘하는 사람도 있겠고 전혀 기억 못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 아이가 모든것을 기억할 거라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하게 말하면 못들을꺼야라는 방심. 그런것은 오히려 아이에게 상처가 된다. 아이도 인간이고 어른도 인간이다. 어찌 인간이 인간의 감정을 모를까. 그게 뭔지 자세히는 몰라도 좋고 나쁘고는 느낄수 있다.
난 미취학아동기를 저런 기억들로 보내고 이사를 갔다. 그때부터 나는 어쩌면 지금의 나로 올수 있었던 사건들이 생겨났던 것같다. 물론 그전부터 이미 정해진 길이였다고 한들... 모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설픈 비밀은 오히려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된다. 완벽할 수 없다면 어설퍼져서도 안된다. 진실은 진실을 낳을수 없지만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그것도 바퀴벌레처럼 아주 많이. 게다가 그것을 잡기란 여간 쉽지도 않다. 또 그 거짓을 억지로 잡으면 더 많은 부화를 야기 시키기도 한다. 부모님은 가장 위대한 직업이다. 나 역시도 내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것은 자기만 잘해도 안되는 것아니고,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돈벌이와 집안일과 또 부부의 화합등 점점 많은 것들을 요구하니까..
어린시절에 조기교육 좋고 좋은 것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다 좋지만 그것이 진정한 가르침과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물질적인 사랑도 정신적인 사랑에서 비롯되지만 물질적으로 해줄수 있는 것은 어느 정점이상은 사실 무의미하다. 이 얘기는 또 시작하면 너무 기니까 각설하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어렸을때 받았던 아픔을 더 좋은 삶을 살수 있도록 치유했다고 말할수 있겠다. 그것도 역시 진정한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나 역시 그것을 결국 알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너무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다면 이런 블로그 따위는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글도 안썼을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했더라도 분명한 공통점은 소녀시대,카라,원더걸즈같은 여자 아이돌은 좋아했었을 것 같다. 진담이고 난 지금 매우 나의 모습에 너무 만족하고 내가 참 어떤면에서는 내 스스로에게 고마우니.분명하게 이 글을 읽어볼 아빠가 혹시나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혹은 생겼다면 그러지 않길 진심으로 바랄뿐이고 나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합니다. 끝.
이 시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다. 만약 이 대로만 자랐다면 난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참고로 난 지금 나의 삶과 상황에 매우 만족한다.) 근데 사실 이 사진 포즈 센스는 남다르다. 지금은 저런 모델로써의 재능은 없는데 말이다. 벤치밑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아빠를 쳐다보는.. 매우 창의적인 포즈.. 과거의 나 자신이지만 놀랍다. 지금보다는 뭔가 개구장이스럽다. 이상태로 컸다면 클럽을 드나들며 여자들에게 추근덕대며 까불고 술마시고 당구장과 PC방을 드나드는 그런 현대의 지극한 평범한 20대가 아니였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단편적인 기억만이 남는 어린시절은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그때는 국민학교. 딱 국민학교라는 용어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몇가지 단편적인 사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초등학교라고 명칭이 바뀌면서는 대부분 많은 일들이 생각나는 것 같다. 아마 의학적으로 이런 것을 말하는 용어가 분명 있을것 같다. 없으면 만들면 되고.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고 슬픈 기억도 재미난 기억도 있다. 좋은 기억은 그 동네 친구들과 매일 놀면서 정말 걱정없이 매일 놀기만 한것 같다. 그리고 아마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는데 그 사진은 안타깝게도 없고 그 친구들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은 우리 앞집 돌계단에서 다 같이 찍은것 같은데.. 그들도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은근히 궁금하다. 막상 그렇게 기억나는 추억은 없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지하차도가 있는 집 앞길을 같이 뛰었던 기억이 내 머릿속에는 너무 행복하게 느껴진다. 근데 사실 그렇게 많이 같이 조깅을 했던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그 느낌이 좋았나보다. 매일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그럴수 없었기에 더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내가 밤늦게 너무 아팠을때 아빠가 날 등에 업고 시내로 막 뛰었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그때는 집에 자가용이 없어서 그리고 아마 새볔이라 택시도 없었던 것일까? 그냥 난 아빠등에 업힌채 계속 뭔가 뛰어다녀졌다. 그리고 병원가서 치료를 받고 그런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열이 많이 나는 나를 업고 새볔에 뛰어가는 아빠의 땀이 흥건한 등이 기억날 뿐이다.
이것은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지는 기억이다. 어느날 엄마가 동네 개에게 물렸다. 난 어디선가 오면서 올라면서 그것을 목격했는데 바보같이 숨어있었다. 지금까지도 너무 후회되고 내가 너무 원망스러워지는 기억이다. 그때도 망설이는 내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서랄까. 더욱이 엄마한테 누군가 해코지를 하면 어떤 이유라던지 가만히 못두게 되는것 같기도 하다.
재미난 기억은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 예쁜여학생이 다녔는데. 어렸을때 나의 친구와 동시에 그 아이를 좋아했었던것 같다. 근데 유치원의 풍습(?)중에 자신의 생일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한테 뽀뽀 받을수가 있었는데 나의 친구와 나는 모두 그 여자아이를 지목했다. 근데 내 친구가 나보다 생일이 많이 빨라서 그 아이에게 뽀뽀 받는것을 보고 매우 부러워했고 결국 나도 뽀뽀를 받았던 것 같다. 근데 더 웃긴건 그 여자 생일때 내친구를 지목해서 씁쓸했고 집에 가면서 친구는 날 약올린것 같다. 웃긴다.
어른들은 모른다. 아이들이 기억할 것 임을. 모르겠어 유독 더 기억 잘하는 사람도 있겠고 전혀 기억 못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 아이가 모든것을 기억할 거라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하게 말하면 못들을꺼야라는 방심. 그런것은 오히려 아이에게 상처가 된다. 아이도 인간이고 어른도 인간이다. 어찌 인간이 인간의 감정을 모를까. 그게 뭔지 자세히는 몰라도 좋고 나쁘고는 느낄수 있다.
난 미취학아동기를 저런 기억들로 보내고 이사를 갔다. 그때부터 나는 어쩌면 지금의 나로 올수 있었던 사건들이 생겨났던 것같다. 물론 그전부터 이미 정해진 길이였다고 한들... 모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설픈 비밀은 오히려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된다. 완벽할 수 없다면 어설퍼져서도 안된다. 진실은 진실을 낳을수 없지만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그것도 바퀴벌레처럼 아주 많이. 게다가 그것을 잡기란 여간 쉽지도 않다. 또 그 거짓을 억지로 잡으면 더 많은 부화를 야기 시키기도 한다. 부모님은 가장 위대한 직업이다. 나 역시도 내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것은 자기만 잘해도 안되는 것아니고,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돈벌이와 집안일과 또 부부의 화합등 점점 많은 것들을 요구하니까..
어린시절에 조기교육 좋고 좋은 것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다 좋지만 그것이 진정한 가르침과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물질적인 사랑도 정신적인 사랑에서 비롯되지만 물질적으로 해줄수 있는 것은 어느 정점이상은 사실 무의미하다. 이 얘기는 또 시작하면 너무 기니까 각설하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어렸을때 받았던 아픔을 더 좋은 삶을 살수 있도록 치유했다고 말할수 있겠다. 그것도 역시 진정한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나 역시 그것을 결국 알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너무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다면 이런 블로그 따위는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글도 안썼을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했더라도 분명한 공통점은 소녀시대,카라,원더걸즈같은 여자 아이돌은 좋아했었을 것 같다. 진담이고 난 지금 매우 나의 모습에 너무 만족하고 내가 참 어떤면에서는 내 스스로에게 고마우니.분명하게 이 글을 읽어볼 아빠가 혹시나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혹은 생겼다면 그러지 않길 진심으로 바랄뿐이고 나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합니다. 끝.
Tags: Childhood
